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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없는 서스펜스의 허망함…'악의 연대기'

최창식(손현주)은 잘나가는 경찰이다. 뛰어난 성과로 표창을 받은 뒤 동료 경찰들과 회포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공격을 받는다.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던 최창식은 실수로 그를 살해하고, 여기서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없는 그는 사건 현장 증거를 제거하고 도망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죽인 그 남자가 경찰서 정면에 있는 크레인에 매달린 채 발견된다. 최창식은 상부로부터 이 사건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영화 '악의 연대기'(감독 백운학)는 스릴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서스펜스가 살아있는 영화다. 이 서스펜스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나온다. 영화는 누구에게나 신뢰를 주고, 존경을 받는 위치에 주인공을 위치시키고,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경우 이 모든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심어준다. '악의 연대기'는 사건을 억지로 꼬아서 의미 없이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어설픈 스릴러의 길을 가지 않는다.

속도감은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한 축이다. 영화는 살인, 크레인, 사건 할당, 수사, 범인 색출, 유전자 검사, 가짜 범인 만들기, 진짜 범인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망설이지 않고 밀어붙인다. 장르의 클리셰가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인데'라는 생각을 여러 번 들게 하지만 백운학 감독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달린다. 이 질주는 이런 생각을 잊게 하는 데 충분하다. 속도로 이야기 자체의 부족한 임팩트를 만회한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손현주의 연기력은 영화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또 다른 쪽 축이다. 최창식은 인생 최악의 사건에 휘말렸지만, 그 사건을 자신이 수사해야 하는 더 끔찍한 상황에 빠진 인물이다. 이 인간의 표정은 불안과 당황, 분노와 이성 사이에 놓여야 한다. 배우가 표정 관리를 못 하는 순간 이 긴장감의 줄은 끊어진다. 손현주는 최창식의 미묘한 감정을 꾹 다문 입과 충혈된 눈에 담는다. 그의 연기는 '악의 연대기'의 공기다.

하지만 '악의 연대기'에는 완성도 높은 스릴러가 갖춰야 할 또 다른 덕목인 '디테일'이 없다.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이 영화는 디테일적인 면에서 부족한 게 아니라 디테일을 아예 갖추지 못했다. 지루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뛰어나다고 말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속도를 높이다 보니 이야기의 세부사항이라는 날을 세우지 못했다. 이는 '악의 연대기'의 치명적인 패착이다.

이 패착의 한쪽 축은 적당주의다. 관객은 눈은 연출가의 생각보다 빠르게 날카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악의 연대기'는 관객을 무시하는 듯한 설정을 여러 번 보여준다. 영화는 사건의 중요한 증거를 최창식이 잠시 인멸하는 과정이라든지, 사건을 절정으로 다다르게 하는 두 인물의 관계라든지, 중요 인물의 정체가 드러나는 지점을 뭉뚱그려 놓는다. 이 무신경함은 관객을 자꾸 영화 밖으로 밀어낸다. 뛰어난 영화치고 디테일을 놓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이 작은 균열이 영화 종반부 연쇄 붕괴로 이어진다. 디테일을 놓치니 영화가 감추고 있는 강력한 반전의 힘도 떨어지고 말았다. 인물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는데 관객은 심드렁하다. 그래서 '악의 연대기'의 결말은 펼쳐놓은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것처럼 찜찜하다. 에필로그는 불필요하게 감상적이다.

'악의 연대기'는 분명한 장점과 명확한 단점이 공존하는 영화다. 즐길 거리가 있는 건 맞지만, 완성도는 떨어지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악의 연대기'는 한국 장르영화가 벗어나지 맴돌고 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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