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집 '문화혁명'의 타이틀곡 '안녕하세요'로 데뷔한 네오 펑크 그룹 '삐삐밴드'의 활동 기간은 불과 3년 남짓. 메인 보컬 이윤정이 탈퇴하고 고구마(권병준)를 영입, 1997년 '삐삐롱스타킹'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기간까지 포함해서다.
그럼에도 1990년대 파격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음악뿐 아니라 의상 등에서 '로파이(Lo-Fi)'(부러 낸 거칠고 낡은 느낌) 스타일을 선보였다. 빨간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트레이닝복 패션 등은 파격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윤정의 독특한 비주얼과 록밴드 'H20'와 '시나위'를 거친 강기영(달파란)·박현준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사운드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아 원년 멤버로는 19년 만인 12일 새 EP 'pppb'를 내놓은 삐삐밴드를 신사동에서 미리 만났다.
핫한 래퍼 자이언티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를 비롯해 90년대 삐삐밴드의 펑크하고 키치적인 사운드를 재현한 'ㅈㄱㅈㄱ',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와 디스코 풍의 펑키한 기타 리프가 귀에 감기는 아이 필 러브', 전위적인 실험성이 돋보이는 '로보트 가나다 라마마'가 실렸다.
일렉트로닉 뮤지션과 영화음악 감독으로 활동 중인 달파란, 원더버드와 3호선 버터플라이를 거쳐 현재 모노톤즈의 멤버로 있는 박현준, 일렉트로닉 팀 EE를 결성한 이윤정 세 멤버는 점잖아졌지만, 음악적인 개성과 신념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저 여타 뮤지션들과 뚜렷하게 달랐다.
-어떻게 다시 만났나?
"작년에 (소속사 팝뮤직 김진석) 대표님이 연락을 하셨어요. 내년 데뷔 20년이니 기념으로 음악을 만들면 어떻겠냐고요. 멤버들끼리 재미있겠다고 해서 시작을 하게 됐죠."(달파란)
-해체 이후 자주 연락했나?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달파란)
-이전과 이번 작업이 어떻게 달랐나?
"시간이 진짜 빨리 지나갔네요. 예전보다는 여유가 있게 작업했죠. 좀 더 편해졌죠. 음악을 보는 시각이 더 넓어져서 장르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어요."(달파란)
"20년 전 작업했던 생각이 퍼뜩 떠올랐어요. 그 시간이 재미있었죠. 당시에도 다른 대중가요 가수들과 섞여 있던 상황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재미있는 문화적인 형태를 다뤘죠. 그때가 그리운데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그런 재미를 누려보자는 생각에 작업했어요."(이윤정)
-파격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부러 파격의 아이콘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죠. 젊으니까 우리 생각에 옮다고 생각했던 것을 그저 했을 뿐이에요(웃음)."(달파란)
"우리는 그냥 있는 그대로 했어요.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죠. 옮다고 믿는 퍼포먼스를 한 거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에요. 이런 밴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이윤정)
-'삐삐롱 스타킹' 시절 생방송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카메라에 침을 뱉어 무기한 출연 금지를 당하면서 보기 힘들어졌고 이후 해체했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죠. 방송을 보신 분들 중에서는 시원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혐오스럽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저희는 하나의 쇼를 한 거예요. 저희가 크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는데, 해외에서는 (방송에서) 그런 일로 출연 정지 식의 제재를 당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라이브를 하다보면 돌발 상황이 생기죠. 본인들이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었죠. 삐삐밴드도 본래 3집까지만 하려고 했고요."(달파란)
"저는 그 방송 때는 팀을 나간 이후인데(웃음), 오빠들과 함께 노래할 때 마이크가 나오지 않아서 무대 위에서 막 던지기도 했어요. 노래를 하라고 해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마이크가 안 나와 던진거죠. 그냥 퍼포먼스가 나온거죠."(이윤정)
-세 멤버가 뭉쳐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시너지는 무엇인가?
"다를 기가 센 편이에요. 예전에는 그 센 것이 그대로 나왔는데 이제는 조절을 할 수 있죠. 무엇인가 부딪히려고 하면 한번 쯤 쉬어가는 여유가 생긴 거죠."(박현준)
-요즘 가요 신은 어떻게 보나?
"음반을 만들 때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데 요즘은 음반이 얼굴을 알리는 수단으로 소비되는 것 같아요. 수익은 딴 곳에서 얻죠. 음악만으로는 수익 창출이 힘들어졌죠. 괜찮아진 점이 있다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쉬워졌고 많이 생겼다는 거요. 재미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돈 받지 않고 믹싱을 해준 적도 있어요. 자신들만의 독특항 색깔을 내서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달파란)
-앞으로 활동은 계속 하나.
"이후에 대해서 오빠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시간적인 것이 맞으면 정규 앨범도 내보자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제대로 된 앨범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이윤정)
이윤정은 EE 멤버인 이현준과 2010년 결혼해 그 새 아들(3)도 얻었다. 역대 대한민국 보컬 중 가장 파격적일 그녀는 "아이가 생기고 나서 자유를 부르짖으니 힘들다"고 웃었다. 하지만 이윤정은 역시 이윤정.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질문을 많이 해요. 왜 나는 남자인데 머리카락이 길고 핑크색 옷을 입냐고. 그러면 이야기하죠. 남자도 핑크색을 좋아하고 머리를 기를 수 있고, 여자도 '빡빡머리'를 할 수 있다고요." 역시 엄마여도 삐삐밴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