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강행 처리를 앞두고 참의원에서 심의 중인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0일 도쿄 국회 의사당 앞을 가득 메웠다.
주최측 추산에 따르면 참가자는 12만 명(경시청 추산 3만여명)으로 안보법안 관련 시위로는 최대 규모였다. 이날 국회 앞은 안보법에 반대하는 시위대들로 넘쳐나 왕복 10차선 도로를 가득 채워 경찰 측은 국회 앞 차도를 개방했다. 경찰은 의사당과 시위대 사이에 버스로 차단벽을 만들었다.
아사히 신문은 31일 이 시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국민투표를 통한 정치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안보법안 반대 시위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 정부는 다음달 20일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 이전 안보 법안 통과를 목표로 강행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처럼 안보 법안에 대한 국민 반대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아베 정권으로서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수적 우위를 자신하고 있는 자민당과 아베 총리는 여전히 강해 처리를 고집하고 있지만 자칫하면 아베 정권의 명운을 안보 법안 통과에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이날 오후 2시께부터 시작된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이날 빗속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전쟁 법안을 당장 폐기하라" "아베 정권 퇴진"을 외쳤다고 NHK등 일본 언론은 전했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보도뿐 아니라 차도로 나와 플래카드를 내걸고 "헌법 9조를 부수지 마라" "전쟁 법안을 당장 폐기해라"며 안보법안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전국 30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안보법안 반대 시위 참가자들은 젊은이부터 노인, 노동조합 및 종교 단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시민들로 구성됐다. 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등 4개 야당 대표도 시위에 참가했다.
일본 명문대인 와세다(早稲田)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히로우치 고가(広内恒河·19)는 "언젠가 (국회 앞 시위 현장의 모습이)교과서에 실릴 것"이라며 "안보 법안에 대해 '해석 개헌'이라는 프로세스가 위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는 "필요한 정책"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아베 총리가 총선 전 가두 연설에서 안보법안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는)속일 작정이었다"라며 7월부터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 남성(77)은 "산적한 일을 내팽개치고 국회 앞에 발을 옮겼다"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는 안보 법안은 국민 주권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에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도 참여해 "헌법 정신, 9조 정신이 이렇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여러분 모두가 보여주어 용기를 얻고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나도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 대표로서 대학생 데라다(寺田)는 "내가 낸 세금이 탄약의 제공에 이용되고 먼 나라의 어린이들이 상처 입는 것만은 절대로 막고 싶다"고 밝혔다.
간호사 지망생인 도쿄 시민 사타케 미키(佐竹美紀·23)는 봉사 활동으로 전쟁에서 상처 받은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의 의료 지원을 경험한 후 "올바른 전쟁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위대원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법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공부 시간을 쪼개 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안보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청년단체 'SEALDs'(실즈)의 단원인 대학생 모토야마 히토시(元山仁士)는 "오늘 많은 사람들과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 힘을 얻었다. 앞으로도 전국의 젊은이와 연계하여 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이어가고 싶다"라고 밝혔다.
집회에는 각계의 전문가도 참가했다.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는 안보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단상에 올랐다. "전쟁에서 최초로 희생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나는 과거 전시 중 여성이 대나무 창을 들고 훈련하는 광경을 봤다. 그러니까 절대로 전쟁 가능한 국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합연구대학원대학의 우주물리학 이케우치 사토루(池内了) 명예교수는 "과학의 군사 이용이 구체적으로 시작되거나, 해외 파병 병사들의 무기 관련 연구를 과학자들에게 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 이러한 싹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키나와(沖縄) 출신의 모토야마(元山)는 "평화를 바라온 오키나와의 생각이 본토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연계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도쿄 뿐 아니라 일본 전국 각지의 30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나고야(名古屋)시에서는 '어머니 단체'가 나고야역 앞에서 시위 행진을 벌이며 "아이를 지키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기타큐슈(北九州)에서는 참가자들이 축구 경기의 "레드카드"에 착안한 붉은 옷을 입고 중심 시가지에서 행진했다.
히로시마(広島)에서도 시민단체의 권유로 집회가 열렸고, 참가자는 거리에서 전단을 배포하거나 "전쟁 반대"를 외치며 안보 법안 반대를 호소했다.
그 동안에도 안보 법안 반대 시위가 국회 주변에서 정기적으로 열려왔으나, 이날 최대 규모의 집회가 열릴 것을 예상한 일본 경시청은, 그 동안의 2배 가까운 경찰력을 투입했다. 부상자 등은 나오지 않았다고 경시청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