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이미 12개 TPP 참여국 중 일본,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관세 철폐 효과가 크지 않은 반면 일본에 대한 시장 개방으로 일부 산업의 시장 잠식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또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려면 12개국과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TPP 가입국 중 10개국과 이미 FTA를 맺고 있고, 꾸준한 이익을 창출해 왔다"며 "새로운 교역 질서에 적응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고려해야겠지만 면밀히 가입에 대한 실익을 검토해야 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12개 나라가 산업계와 국내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비준도)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우리는 이것을 기회 요인으로 삼아서 차분히 TPP 가입을 신중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쟁력을 키우나가는 시간으로 삼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TPP 가입이 사실상 일본과의 FTA 체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대일 무역 적자가 215억8500만 달러에 이른다. 화학공업제품, 기계류, 전기전자제품, 철강금속제품 등 대부분의 핵심 산업에서 무역 적자를 내고 있다. 아직까지 주요 산업의 경쟁력은 일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에 대한 일본의 관세율 2% 안팎이어서 FTA 체결로 인한 충격이 크지 않은 반면 우리는 6%에 달하는 대일 관세율을 내줘야 한다. 현재 업계에서는 우리가 TPP에 참여할 경우 부품·소재 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시장 잠식이 나타나고 대일 무역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TPP 가입으로 제조업 강국인 일본에 시장이 개방되면 일부 경쟁 관계 또는 비교 열위에 있는 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자동차(부품)와 기계류 일부, 발전 초기 단계의 고부가가치 소재 분야 등은 국내 시장 잠식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제 위원은 "TPP 참여로 일본에 대해 시장을 개방할 경우 일본과의 양자 협상을 통해 이 분야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관세철폐 기간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TPP가 단지 관세철폐 이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신(新) 통상규범' 형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TPP 전략포럼'에서 "TPP 규범 중 민감하게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새로 도입한 부분은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영기업'에 대한 내용이 새로 들어왔고 '수산보조금 금지', '환경' 부분도 계약 당사자에게 수준 높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노동도 훈시적 규정에서 벗어나 국가간 문제제기에 있어 상당히 높은 규범의 제도가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툼이 생길 수 있다"며 "새로운 규범들을 수용 가능한지 검토하고 사회적 비용에 대해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TPP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통상 질서인 만큼 참여를 피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또 TPP 가입국들이 누적원산지 규정을 활용해 '생산 분업'에 나설 경우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국제통상질서가 잡혀가는 과정에서 일본과의 FTA로 몇개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개방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한일 FTA는 마냥 미룰 수 없는 문제이고 우리가 득을 볼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TPP 참여는) 발효 이후 추가협정을 통해 개방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빨라야 2017년이 될 것으로 본다"며 "'TPP 조기 참여 포기'를 대가로 얻어낸 한중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조기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