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0억원을 지급하라는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결정적 원인은 노 관장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뇌물이어서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재산 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판단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노 관장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의 재산분할액은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게 다시 심리해 산정하는 만큼 노 관장에게 다소 불리해진 형국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액 1조3808억원·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 판결 가운데 노 관장이 청구한 재산분할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 성장 기반이었다고 본 항소심의 판단을 배척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최대 쟁점인 최 회장 '특유재산'(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을 인정했다. 최 회장 측은 SK그룹 주식이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증여받은 2억8000만원으로 취득한 것이라면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반면 노 관장 측은 부친인 노 전 대통령이 준 비자금 300억원 등으로 SK그룹이 성장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비자금 300억원 출처를 대통령 재직시 받은 뇌물로 판단, 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다며 '불법원인급여'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뇌물의 일부인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에게 지원하고 함구해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이를 '불법원인급여'로 봤다.
대법원은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정한 민법 746조 입법 취지를 볼 때 이혼 재산분할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노 관장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돌려달라고 재판에서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불법성이 명확한 금전 지원을 재판에서 재산형성 기여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노 관장이 노 전 대통령이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분할에서의 피고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며 "결국 노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선 안 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금전 지원 행위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로 참작한 원심은 민법 746조 불법원인급여와 재산분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함으로써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746조의 취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또 대법원은 최 회장이 이미 처분해 보유하지 않고 있던 재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한 2심 판단도 틀렸다고 봤다. 공동재산의 35%를 노 관장이 가져가야 한다는 2심 판단에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종현 학술원, 친인척 18명에게 증여한 SK 주식회사 주식 329만주 등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2014년 8월 한국고등교육재단에 SK C&C 주식 9만1895주를, 2018년 10월 ‘최종현 학술원’에 에스케이㈜ 주식 20만주를, 2018년 11월 친인척 18명에게 에스케이㈜ 주식 329만주를 각각 증여했고, 2012년부터는 동생인 최재원 에스케이 수석부회장 증여 및 SK그룹 급여 반납 등으로 총 927억7600만원을 처분했다. 최 부회장의 증여세 246억원도 대납했다.
이들 증여는 사실심이 인정한 혼인관계 파탄일(2019년 12월 4일) 이전에 이뤄졌고, 최 회장이 SK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부부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항소심은 노 전 대통령의 금전 지원 사실을 최 회장 명의 SK 주식회사 주식 및 상속주식의 형성이나 가치 유지·증가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했다. 이러한 판단에는 불법원인급여와 재산분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심 법원은 SK 지분을 포함한 두 사람 공동재산 4조115억 원 중 35%(1조4040억 원)가 노 관장 몫이라고 판단했다. 이중 최 회장 명의로 돼 있는 1조3808억 원을 노 관장에게 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판단에 오류가 있다고 봤다. 두 사람의 공동재산에서 SK 지분은 제외돼야 하고, 공동재산의 35%를 노 관장이 가져가야 한다는 2심 판단도 재고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