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 업계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별들의 전쟁이다. 거장 지휘자와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과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이 잇따른다.
2년 안팎 전부터 레퍼토리를 결정하는 클래식음악 업계 관례상 내년까지 레퍼토리는 알차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영향을 받아 기업 후원 등을 실제적으로 이끌어내기 힘든 2018년 시즌부터는 이 같은 성찬을 장담하기 힘들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거장 지휘자 & 정상급 오케스트라
가장 눈길을 끄는 내한공연은 사이먼 래틀 & 베를린필하모닉(11월 19~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금호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이다. 래틀과 베를린 필의 마지막 조합을 볼 수 있는 기회다. 래틀은 2018년 이 오케스트라를 떠난다. 그는 2002년부터 15년간 베를린 필을 이끌며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시켰다.
재단을 설립해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었고 온라인 공연 실황 중계 시스템인 '디지털 콘서트 홀 시스템'을 도입, 세계 어느 곳에서 악단의 연주를 들을 수 있게 정비했다. 이번에는 중국 출신 수퍼스타인 피아니스트 랑랑도 협연자로 나서 버르토크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준다.
베를린 필의 지휘봉을 2018년부터 넘겨 받는 러시아 태생의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이끄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9월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눈길을 끈다.
러시아 옴스크 출신인 페트렌코는 2013∼2014 시즌부터 뮌헨 바이에른 오페라 극장의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시카고 심포니 등 정상급 콘서트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를 가진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16세기 뮌헨 궁정악단을 모태로 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바이에른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독일 최정상을 자랑한다. 메인 레퍼토리는 말러 교향곡 5번이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감수성과 독일 피아니즘의 절제미를 겸비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가 협연한다.
1894년에 창단돼 명실공히 체코를 대표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9월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내한공연도 관심을 끈다. 지휘자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와 함께 내한한다.
슬라브 음악 해석에 정평 난 체코필은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같은 모국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연주력을 뽐내고 있다.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의 작품들로 꾸며질 이번 무대는 프라하 전통의 음악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최연소 첼로 수석에 임명된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가 협연자로 나선다.
미국 빅 5에 꼽히는 명문악단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음악감독 야닉 네제-세겐과 내한공연(6월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한다. 가장 미국적인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역동성이 살아 있는 호화로운 음색이 특징이다. 특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출돼 미국 클래식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마에스트로의 입지를 굳힌 야닉 네제-세갱의 섬세한 해석과 젊은 패기가 기대된다.
이 밖에 서독 베를린 필하모닉에 견줘 '동독의 자존심'으로 시대를 풍미한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엘리아후 인발과 내한공연(3월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연다.
지휘계의 거목 쿠르트 잔데를링의 아들로 독일 관현악의 권위 있는 해석과 절도를 계승하고 있는 미하엘 잔데를링이 드레스덴 필하모닉(7월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독일 정통 사운드를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클래식계의 차르로 군림하고 있는 마에스트로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12월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함께 다시 내한한다.
게르기예프는 내년부터 5년간 '게르기예프 페스티벌'이라는 부제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내년은 그 첫 해로, '천둥과 빗방울을 연주하는 번개의 손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가 함께한다. 러시아 음악의 서정성을 간직하고 있는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을 선사한다.
◇핫한 지휘자와 젊은 지휘자 러시
클래식음악계에서 가장 핫한 지휘자와 '차세대 지휘자'들의 역량도 기대를 모은다. 지난달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명연을 선보인 대니얼 하딩(41)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2월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함께 내한한다.
2008년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4위에 오른 악단이다. 하딩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전개될 이번 연주에는 최고의 트럼페터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함께한다. 말러 교향곡 4번에서는 크리스티아네 카르크의 청아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다니엘레 가티(55)는 마리스 얀손스로부터 상임지휘자 바통을 이어받아 이끌고 있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 허바우(11월 15~16일 롯데콘서트홀)와 내한한다. 두 차례 다른 레퍼토리로 공연하며, 가티의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브람스 교향곡 1번과 말러 교향곡 4번을 연주한다. 프랑크 페터 짐머만이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2014년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발탁되며 이름을 알린 다비드 아프캄(33)은 실험과 혁신의 도시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6월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함께 내한한다. 아프캄은 신선한 접근 방식으로 젊은 클래식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역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무결점의 테크닉과 준수한 외모, 무대 매너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레이 첸이 브람스 협주곡을 들려준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던 아르맹 조르당의 아들 필립 조르당(42)은 자신이 수석 지휘자로 있는 빈 심포니(12월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함께 내한한다. 빈 필과 함께 빈 오케스트라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악단이다. 빈 특유의 고전적인 울림과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콘서트와 오페라 레퍼토리를 A급으로 소화하는 조르당은 동세대 지휘자 가운데 선두권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연이은 선물
내년에는 유독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독주회 무대가 잇달아 마련된다.
포문은 한국인 첫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1월 3~4일 롯데콘서트홀)이 연다. 지난달 양일간 진행된 예매에서 첫째 날 3000석을 1시간, 둘째 날 800석을 9분만에 매진시켰다. 이번 리사이틀은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에서 선보이는첫 리사이틀이라는 점과 내년 서울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콘서트라는 점에서 많은 음악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조성진은 같은 해 5월 통영에서 1차례 리사이틀을 열지만 다른 공연은 예정돼 있지 않다.
4월22일·6월10일·9월9일·12월9일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여는 손열음도 기대를 모은다. 그녀는 특히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원주의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트로트 가수와 협업 무대도 선보인다.
베토벤에 집중하는 김선욱의 리사이틀(3월18일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한 전국투어)도 관심을 끈다. 오랜 시간 동안, 베토벤 소나타에 천착했던 김선욱이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 소나타인 열정, 비창, 월광(2월 발매 예정)으로 내년을 연다.
'건반위의 구도자'인 백건우도 베토벤(9월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앞서 3월부터 전국 32개 도시 전국투어)으로 팬들을 찾는다. 2007년 32곡의 베토벤 소나타를 일주일만에 완주하는 유례없는 무대를 선보여 한국 클래식사에 큰 획을 백건우는 10년 만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로 팬들을 찾는다.
조지아 공화국 출신의 스타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독주회(11월1일 롯데콘서트홀)도 눈길을 끈다. 올해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국내팬들에게 강렬한 터치와 폭풍 같은 연주, 그리고 패션 모델을 방불케 하는 쇼맨십 등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연주다. 이번에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과시할 예정이다.
◇그 밖에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
전설의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마지막 월드 투어의 하나(3월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내한한다. 47년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무대로 공연 타이틀 또한 '음악과 함께한 인생'이다. 그가 좋아했던 노래, 그를 있게 한 노래를 세계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선사하는 무대다.
내년부터 수석객원지휘자로서 서울시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 두 지휘자가 총 12번의 공연을 지휘하는 무대도 기대작이다.
피셔는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5월 12~13일)을 비롯해 하이든, 브람스, 브루크너, 뒤티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까지 다채로운 공연으로 포디엄에 오르게 된다.
마르쿠스 슈텐츠는 슈만 교향곡 2번(1월 20~21일)과 브루크너의 영감에 찬 대작 교향곡 7번(6월 22~23일)을 지휘,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발휘한다.
이와 함께 서울시향은 분실된 이후 100년 만에 발견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장송적 노래'(Funeral Song Op. 5)를 작곡된 지 109년 만인 내년 1월 20~21일 수석 객원 지휘자인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롯데콘서트홀에서 아시아 초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