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코앞에서 영화 '레옹'(1994)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를 공동 작곡가인 스팅(66)과 도미닉 밀러(57)의 협연으로 듣는 것만큼 호사스런 일도 없다.
4년6개월 만인 31일 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스팅이 펼친 '현대카드 큐레이티드 스팅'은 연못에서 쓴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부를 만했다.
1만석은 거뜬히 채울 스팅이 400석짜리 소극장 무대에 선 이날 공연은 비현실적일 만큼 스펙터클했다. 연못에서 바다를 바라보게끔 만드는 마법이었다.
오후 8시20분께 잿빛 반소매 티셔츠에 베이스를 들고 밴드 '폴리스' 시절의 명곡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Ⅱ'를 부르며 포문을 연 순간부터 공연장에는 마법 가루가 뿌려졌다.
역시 폴리스 시절의 '스피리츠 인 더 매터리얼 월드(Spirits In The Material World)'를 거쳐 '잉글리시맨 인 뉴욕'이 울려 퍼지자 객석에서 떼창이 시작됐다. 강렬한 드럼 비트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사이 노련하지만 여전히 감미로운 스팅의 목소리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스팅의 오른팔로 최근 단독 내한공연하기도 한 밀러의 기타 화력도 여전했다.
스팅은 공연장이 60~70년대 굵직한 영국 뮤지션들이 공연한 런던의 소극장 '마키 클럽(Marquee Club)'을 떠오르게 한다면서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에 판타스틱이라고 즐거워했다.
'에브리 리틀 싱 쉬 더즈 이즈 매직'과 '원 파인 데이'에서는 어느새 일흔을 앞된 나이에도 멈추지 않은 에너지와 섹시함을 과시했다.
'쉬스 투 굿 포 미'에서는 밀러의 서정적인 기타와 반도네온의 아련한 정서가 맞물렸다. 국내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울려 퍼진 '필즈 오브 골드'는 잔잔하게 뜨거웠는데 아이리시 풍의 반도네온의 연주가 영국의 정서를 애틋하게 풍겼다.
강렬한 폴리스의 '메시지 인 어 보틀'을 부를 때부터 중후하면서도 그윽한 스팅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이후 스페셜 게스트로 자신의 아들인 베이시스트 조 섬너(Joe Sumner)가 데이비드 보위의 '애시스 투 애시스'를 불렀을 때만을 제외하고 지치지 않은 열정으로 공연을 끌고갔다.
특히 400석 객석에서 울려 퍼지는 '5만'(50,000)의 아이러니함과 뜨거움은 관객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고 '워킹 온 더 문'의 몽환적이면서도 뜨거운 연주가 그 진동을 이어 받았다. '소 론니'의 처절한 서정성은 밀러의 기타 솔로로 배가 됐다.
'데저트 로즈'의 아프리카 토속적인 리듬은 객석 전체를 주술에 걸려 놓았고, 관객들에게 동화작용을 일으켰다. 폴리스의 뜨거운 '록산느'의 붉은 조명, 빌 위더스의 블루스인 '에인트 노 선샤인'의 푸른 조명을 오가며 온탕과 냉탕의 묘미를 선사한 본 공연의 마지막은 명연이었다.
첫 번째 앙코르 무대의 첫곡은 몰아치는 사운드인 폴리스의 '넥스트 투 유'. 이어서 폴리스 시절의 명곡 '에브리 브리스 유 테이크'가 울려퍼지자 공연장은 올림픽주경기장 부럽지 않은 축제 모드로 돌입했다. 400명 합창의 전율은 5만명 그것에 못지않았다. 두 번째 앙코르 무대에서는 기타를 둘러메고 나와 '프래자일'로 품격 있게 마무리 했다.
앞서 영국의 팝스타 엘턴 존이 2015년 11월27일 역시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500명 규모의 소극장 콘서트를 열었는데 '로켓맨'으로 대표되는 존의 공연이 하늘을 상징화했다면 스팅의 이날 공연은 바다처럼 펼쳐졌다.
2012년 12월5일 폭설이 내린 가운데도 6000명이 운집한 스팅의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공연이 세계지도를 펼쳐놓은 것이었다면 이날 스팅의 공연은 나침반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원경을 보게 하는 묘를 발휘했다.
100분 동안 치러진 소극장의 밀도 높은 공연은 밀폐가 아닌 바다로 밀고 나가는 현장이었다. 지하에 있는 공연장을 벗어나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가자 수평선이 펼쳐지는 듯했다.
영국 바닷가 마을의 조선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자적적인 이야기를 녹여낸 뮤지컬 '더 라스트 십'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기도 한 스팅의 항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이날 400명은 귀중한 선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