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한은 "실질임금 그대론데 임금 올랐다 착각… 화폐환상 커"

화폐환상, 교육수준 높을수록 작게 나타나
화폐환상 클수록 가계 순자산 규모↓…서울은 반대

 

[파이낸셜데일리  송지수 기자]   우리나라도 명목임금이 상승한 경우를 실질임금이 상승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른바 '화폐환상'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화폐환상은 교육수준이 높을 수록 작게 나타났다. 화폐환상이 클수록 가계의 지방 거주자의 경우 순자산 규모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서울은 그 반대였다.

28일 한국은행의 'BOK 경제연구'에 실린 '한국의 화폐환상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이 2018년 6~7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20~59세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등 화폐환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화폐환상이란 케이스 이론의 핵심 가정 중 하나로, 경제주체들이 물가변동을 고려한 후의 실질가치가 아닌 화폐의 명목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가와 명목임금이 각각 2%씩 상승한 경우, 실질임금은 불변
인데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임금이 상승했다고 여기는 경우 화폐환상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은이 선행연구 질문을 이용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주택거래나 일반거래에서 손익평가, 임금수준 등 판단시 실질가치보다 명목가치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등 화폐환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세 명이 똑 같이 2억원에 주택을 매입한 후 1년 후 매도 한 경우를 가정 해 봤다. A씨는 1억5400만원(매입액보다 23% 적은 금액)에 매도했지만 물가가 25% 하락했고, B씨는 1억9800만원(매입액보다 1% 적은 금액)에 매도했지만 물가는 같았고, C씨는 2억4600만원(매입액보다 23% 많은 금액)에 매도했지만 물가가 25% 상승했다. 이에 대해 주택거래에 대해 거래를 잘한 순서대로 1등~3등을 나열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6.4%가 가장 투자를 잘한 사람으로 C씨를 선택했다. 그런데 C씨의 경우 명목수익률(23%)만 높을 뿐 실질수익률(-2%)은 가장 낮았다. 반면 실질수익률이 가장 높은 A씨가 거래를 가장 잘 했다고 응답한 비중은 25.4%에 불과했으며 나머지(18.2%)는 B씨를 선택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맥락의 질문을 제시한 경우에는 화폐환상 가설과 부합하지 않는 결과도 나타났다.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후, 은행 예금을 늘릴지 또는 주택투자 비중을 늘릴 것인지 질문한 경우에는, 실물자산인 주택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는 합리적인 응답이 많이 나왔다.

또 실질금리는 불변이지만 명목금리는 변화하는 상황을 제시한 후, 가계에 주택투자를 조정할 것인지 설문한 결과, 다수가 투자를 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합리적인 응답을 했다.

화폐환상이 어떤 특성이 있는 응답자에서 강하게 나타나는지 회귀분석한 결과 화폐환상은 교육수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인지력이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개념 이해가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은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연구위원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화폐환상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화폐환상 지수가 오히려 높다고 나왔다"며 "인지성찰검사(CRT) 점수, 인플레이션 변동시 실질가치 변화에 관한 문제를 맞췄는지 여부는 화폐환상지수와 유의미한 연관관계가 없어 인플레이션 개념 이해 부족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또 화폐환상이 클수록 지방 거주자의 경우 가계의 순자산 규모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 거주자의 경우 화폐환상이 클수록 순자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상이한 결과도 나왔다.

황 연구위원은 "서울이 약하게 나마 화폐환상이 가구 순자산에 플러스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사 당시 서울과 지방의 주택가격 상승률이 달라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화폐환상이 큰 가계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최적의 자산배분을 이뤄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제로 화폐환상이 큰 덴마크 가계의 연평균 투자수익률이 낮다고 보고된 바 있다"며 "이는 화폐환상이 가계의 자산축적에 일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성인들은 화폐환상 외에도 손실회피, 준거점 의존성, 프레이밍 효과 등 다양한 행태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손실회피는 기댓값이 양(+)이더라도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나 투자를 회피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는 손실에 대해 느끼는 고통 혹은 비효용이 같은 금액의 이득으로부터 느끼는 행복감이나 효용보다 통상 두 배 이상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준거점 의존성은 절대금액 혹은 절대수치 보다는, 기준이 되는 준거점 금액(수치)보다 큰지 여부에 따라 평가와 의사결정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가령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이 100만원의 수익을 내는 경우, 250만원의 수익을 예상했으나 200만원의 수익 밖에 못 올린 사람보다 투자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다. 프레이밍 효과: 선택지가 보여지는 방식, 혹은 경제주체가 어떤 문제를 보는 관점이나 틀에 따라 생각과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계가 이렇게 화폐환상을 지니고 있다는 설문결과는 거시경제 분석과 예측 등에 있어 실질변수 못지않게 명목변수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며 "경제정책에 관한 선호에 있어 프레이밍 효과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확인하였는데 이는 경제정책의 수립과 커뮤니케이션시, 다양한 행태적 속성을 고려하여 정책을 설계하고 경제주체와 소통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가 설문조사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최근의 주택가격 급등, 인플레이션 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황 연구위원은 "조사에서 최근 3개년 간 경험한 인플레이션 영향력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고 주택 가격도 그 사이에 많이 변동했기 때문에 그 사이 사람들의 물가에 대한 인식과 주택투자 비중에 대한 응답도 달라졌을 것"며 "조사 당시와 지금 상황이 많이 틀린데, 지금 조사했다면 결과가 좀 다르게 나왔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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