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김정호 기자] 2년 연속 해외 도그쇼에서 우승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치하한, 훌륭한 보행과 스택킹 시범을 선보인 명견 타바스코가 인천공항 화물청사에서 열려있던 철장 문을 통해 주변의 습지대로 달아났다.
개를 찾아서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한물간 여배우 보희, 무기력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가정주부 정숙, 개를 잃어버려 추방 위기에 놓인 이주노동자 라퓨라퓨, 현실의 변화가 귀찮다가 개를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만수. 이들은 영국 왕실 도그쇼 우승견 ‘타바스코’의 실종 사건을 통해 인생 역전의 기회를 꿈꾼다.
극단 사개탐사의 타바스코가 오는 10월 6일부터 16일까지 알과핵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박혜선 연출은 2015년 한국 초연된 데보라 그레이스 위너의 <타바스코>를 번안·각색하여 한국정서에 맞춰 현대인의 고립감, 외로움 그리고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유진 오닐 재단에서 주최하는 “2014 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타바스코>는 현대인의 무기력한 좌절감과 현실에 대한 탈출 본능을 이야기하며 인간 본연의 심리를 디테일하면서 우화적으로 그려냈다.

<타바스코>는 일상의 평범함, 시간의 흐름, 과장된 기대치가 가져 오는 현실의 좌절감을 풍자하고 있다. 항상 이벤트를 바라며 살고 있는 현 사회인들에게 이런 풍자와 해프닝이 가져오는 악순환의 연속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벤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무기력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중성을 통해 우리는 현대인의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을 상기하고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좌절과 희망이 개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화적인 모습은 관객의 웃음을 유발시키는 반면 그 뒤에 감춰진 씁쓸함 또한 곱씹게 한다. 타자이기 때문에 벌어질 수밖에 없는 소통의 부재는 대사와 연극적 리듬을 통해 극대화된다.
‘대화하고 있으나 대화하고 있지 않은’ 현대인의 모순된 모습을 풍자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담아낸다.
연극과 방송을 오가며 다채로운 활약을 선보이는 김난희, 연출과 배우로 다재다능한 장지은, 독립영화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장덕주,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구도균이 박혜선 연출과 만나 펼치는 씁쓸한 희극 <타바스코>는 초연보다 더 큰 공감과 웃음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