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신격호 롯데 회장까지…'성년후견인'이 뭐지

노인 위한 최소한 안정장치 '성년후견인 제도'

#1 수십 억대 자산가 A씨는 얼마 전 병원으로부터 치매판정을 받았다. A씨의 딸은 80대 중반의 A씨와 중증정신장애를 앓는 오빠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주변 지인들의 진정서를 접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자산가 A씨를 위해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을 했다. 한 변호사가 A씨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재산도 지키고 아들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 검찰은 치매에 걸린 80대 재력가 A씨와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50대 아들 B씨에 대해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50대 딸인 C씨는 A씨와 B씨 명의 30억원대 상당의 상가건물을 매각하고, 그 대금까지 챙겼다. 이웃주민들은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주민들은 제출한 진성서에서 "C씨가 아버지 A씨와 오빠 B씨를 요양원에 유기하고 이들의 재산을 빼돌렸다"며 성년후견청구를 요청했다. 검찰은 A씨와 B씨가 비록 상가 건물 매각에 동의하긴 했지만, 이들의 정신능력이 정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만큼 성년후견개시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12월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씨가 서울가정법원에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을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성년후견인제도는 2013년 7월 도입됐다. 정신적인 제약이 생겨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해진 성인에게 법원은 후견인을 결정한다. 후견인은 재산관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보호와 지원을 돕는다.

후견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법원이 결정하는 법정후견인과 후견계약에 따라 본인이 후견인을 결정하는 임의후견인이. 이중 법정후견인의 경우 청구요건과 권한의 범위, 선임의 효과 등에 따라 성년후견인, 한정후견인, 특정후견인 등으로 나뉜다.

◇금치산·한정치산제도와 차이점은.

기존 금친산·한정치산은 재산관리에 중점을 둔 제도다. 그동안 금치산·한정치산자 선고를 받으면 본인의 행위능력이 광범위하게 제한을 받았다. 또 후견인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감독하기가 어려워 당사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성년후견인제도는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바탕으로 재산뿐만 아니라 치료와 요양 등 신상에 관한 분야에도 폭 넓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후견인이 선임돼도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영역이 보장된다. 신상과 관련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된다.

법정후견인의 경우 본인의 의사를 존중 및 당사자의 건강이나 생활관계, 재산상황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법원에서 가장 적합한 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한다. 가족이나 친척, 친구는 물론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 관계 분야 전문가들도 후견인으로 선임될 수 있다. 다수의 선임도 가능하다.

선임된 후견인들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 및 법률행위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재산관리와 의료, 재활, 교육 등 신상에 관한 신상보호, 생황영역 등 매우 다양하게 결정된다.

◇신 총괄회장 '성년후견인 지정' 롯데 해결의 열쇠?

신 총괄회장의 성년 후견인 지정 여부 가리기 위한 법원 심리일자가 2월3일로 지정됐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와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가 관심이다.

이번 심리에서 신청인 신정숙씨는 오빠인 신 총괄회장에게 성년후견인이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진술한다. 신 총괄회장에게는 성년후견인 지정에 대한 동의여부와 정신건강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판단하는 수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법원은 후견인 신청자의 진술, 신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 등에 대한 의료기록과 전문가 감정 등을 바탕으로 성년후견인 지정 필요여부 및 후견인 지정을 결정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법원이 성년후견인 지정을 받아들일 경우 롯데가 경영권 분쟁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을 지정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 현재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이 그다지 양호하지 못하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이럴 경우 그동안 '신 총괄회장은 건강하다. 아버지가 지명한 후계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던 신동주 회장의 명분과 설득력을 잃게 된다. 아울러 '아버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며 제기한 다수의 '위임장 소송'에서도 불리한 상황으로 급반전될 수 있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성년후견인 제도를 통해 쓸데없는 형제 간 잡음을 없애고, 법적으로 원만하게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 후견제도 활성화 필요

현재 성년후견인은 지난해 5월까지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된 2400명 가운데 친족이 2046명으로 85%를 차지한다.

하지만 전문 지식이 부족한 친족 후견인들이 복잡한 후견 사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고, 본인이 상속받을 가능성을 예상해 재산 문제를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년후견제도가 활성화되려면 '법인' 후견인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법인이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인구 10만 명당 후견을 받고 있는 성인의 수는 한국이 10명 남짓인데 반해, 독일은 1600여명, 일본은 128명 수준으로 많다. 더욱이 성년후견을 전문적으로 위임하는 법인 및 후견인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제도까지 갖추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에서 가정재판소 내에 후견센터를 운영하며, 전문적으로 사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도 지난 11일부터 그 동안 불가능했던 '피한정후견인'의 금융거래 조회가 가능해지는 등 후견인 업무가 좀 더 원활해질 수 있도록 보완점을 찾아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보다 많은 노인 인구가 자존감을 가지고 안정적인 노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년후견인 제도를 잘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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