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냄비 속 개구리 신세' 한국 수출…新주력산업 창출에 승부 걸어야

예견된 부진이지만…대외적 악재에 무너진 수출

수출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1월 수출이 전년 같은 달보다 18.5% 감소하는 등 지난 13개월 연속 수출 감소를 이어가는 사상 초유의 장기 수출 부진이 우리를 덮쳤다. 

그 동안 정부와 수출 기업들은 중국의 추격, 세계 경제성장 둔화, 저유가 등으로 지금의 수출 비상사태는 예견됐는데도 지난 2011~2011년 '무역 1조 달러' 4년 연속 달성이라는 달콤한 성과에 취해 대비책을 등한시 해 왔다.

우리나라 수출 10대 주력 품목은 지난 2000년 이후 15년째 거의 변화가 없다. 

최근에는 내수가 위축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 성장 공식도 깨졌다. 국내 시장을 테스트 베드 삼아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검증하고, 해외 시장에서 판매하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한 때 수출의존도가 70%에 육박했던 우리 경제는 수출탑이 무너지면서 오히려 수출이 우리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의 GDP 성장 기여율은 0.2%로 2009년 금융위기(-0.2%)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실물 경제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뒤늦게 해외 경제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마케팅 활성화를 통한 단기 대책을 내놓고, 주형환 장관도 수출회복 비상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직접 기업들과 만나 "수출 애로를 해결하겠다"며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수출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물이 서서히 끓어 오를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다 냄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냄비 속 개구리'로 전락하기 전에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 경제…해외 경제변수에 취약

최근의 수출부진은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 저유가, 그리고 중·일 경쟁국 환율 약세 등 대외적인 악재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다.

하지만 올해 1월 들어 수출이 폭삭 주저앉은 이유는 뭘까. 문제는 기형적인 한국의 무역의존도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수출입이 국민총소득(GNI)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14년 99.5%로 지난 2008년 이후 90%를 상회하고 있다. 수출입의 대 GNI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대외 의존도가 크다는 것으로, 해외 경제변수에 자칫 국내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특히 지역별로 지난해 기준 중국 26.1%, 미국 13.2%로 쏠림이 크고, 유럽연합(EU)은 9.1%로 상대적으로 우리 제품이 열위다. 아세안은 14.2%지만 신흥국 경기 침체 위기 상황에서 걱정이 태산이다. 

품목 역시 지난 15년간 큰 변화가 없다. 2000년 우리나라 10대 수출품목은 반도체·컴퓨터·자동차·석유제품·선박·무선통신기기·합성수지·철강판·의류·영상기기 순이다. 지난해 10대 품목은 여기에서 의류, 영상기기가 빠지고 평판디스플레이, 플라스틱제품 등이 추가된 데 불과하다.

사실 2009년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는 미국 등 선진국의 과소비와 아시아 신흥국의 수출 주도 성장이라는 '글로벌 불균형' 속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유로존에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과거와 같은 수출 주도형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하향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는 수출 의존형 성장궤도에서 벗어나 내수시장을 키워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내수 중심 성장을 기조로 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으나 식어가는 내수시장에 불을 지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년 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1.5%로 2009년 4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개별소비세 인하와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형 할인행사 덕분으로, 오히려 소비를 앞당겨 향후 소비절벽마저 우려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뾰족한 수가 없는 정부…수출 구조변화 모색, 내수 성장으로 수출 뒷받침해야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 

최근의 수출 부진이 저유가, 중국·신흥국 경기 둔화 등 대외 악재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실제로 이날 주형환 산업부 장관이 주재하는 '제1차 민·관 합동 수출투자대책회의'가 열렸지만 연초 업무보고에서 나온 수출부진 대책에서 크게 나아진 것은 없는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오늘 회의의 키 메시지는 정부와 유관기관이 하나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협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당장 수출부진을 유턴시킬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다기보다는 연초 세운 계획들을 당초보다 상향하고 시기를 앞당기자는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인식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양금승 한국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전반적인 세계경기가 침체 기로에 섰고,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다보니까 수출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며 "환율, 저유가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해법 마련이 요원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활보할 수 있도록 산업구조개편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내수 시장 활성화를 통해 신(新) 주력산업 발굴을 위해 끈기있게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 실장은 "그동안 우리 수출기업들이 내수를 테스트 베드 삼아 제품을 개발하고, 좋은 제품으로 인정 받아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의 전략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 내수시장이 위축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며 "국내 기업들이 일단 국내에서 우수상품 개발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내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어 "특히 최근 몇 년간 해외 시장에서 우리 기업끼리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제살 깎아먹기'식 수주전이 벌어진 것은 문제"라며 "국회에서 기업활력제고특벌법이 통과돼 하루라도 빨리 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병유 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최근의 수출 부진은 세계 경기 하강과 환율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내놓을 수 있는 타개책이 별로 없다"며 "하지만 나중에 회복기로 접어들었을 때 수출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그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우리 주력품목인 철강, 석유화학 등은 단가에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이라며 "결국 공급과잉, 유가, 환율 등의 영향을 덜 받는 소비재 수출을 늘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 정부에서 추진하는 수출 마케팅 지원은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주력 산업의 경쟁력 둔화에 대한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력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십년간 동일한 품목이 유지되고 있는 10대 수출품목에서 벗어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화장품 등과 같이 유망품목을 발굴해 신 주력산업을 창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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