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숨가쁘게 달려온 이재용 공판…'결정적 증거' 제시되지 못해

"증거가 차고 넘친다" 특검 공언과 정반대로 구체적 물증 증언 없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이 3개월 가량 거듭되고 있으나 당초 특검이 주장해온 결정적 물증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지난 5일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 지난 4월7일 첫 공판을 시작한 공판은 이날까지 36차까지 숨가쁘게 이어져왔다.

  140여명의 진술조서와 각종 서류증거 조사 이후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서 현재까지 44명에 달하는 증인을 법정에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 즉 '스모킹건'이 없어 특검의 창이 무뎌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6일 재계 및 법조계 등에 따르면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삼성이 최순실의 영향력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여부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여부 ▲청와대가 삼성의 현안 해결을 위해 관련 부처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 핵심 쟁점을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특검이 아직 결정적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경영승계 등 삼성그룹 현안과 관련한 편의를 받기 위해 박 전 대통령측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 400억원대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공여 등)로 기소된 이 부회장 재판은 통상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열리는 여느 형사재판과 달리 주 3회 강행군을 이어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재판을 두고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특검 공언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달 21일 재판부는 "사실관계를 망라하는 신문은 이제 필요없다"며 "삼성 현안에 대한 청와대 영향력이나 삼성의 개입 여부를 밝히라"고 특검을 압박했다.

◇삼성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지원 한 '피해자'"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의 관계를 미리 알고,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대통령을 통해 승계와 관련된 제반 현안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밝혀진 사실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시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고, 대통령이 삼성에 요구한 승마 유망주 지원이 사실상 정씨 단독 지원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불과하다.

  정보력이 뛰어나고 승마협회 회장사까지 맡고 있던 삼성이 최순실의 실체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는 것이 특검의 주장이다.

  그러나 삼성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실체를 인지한 것은 대통령으로부터 '승마 지원이 미흡하다'고 크게 질책을 당한 이후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지원을 한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검은 삼성의 승마 지원이 정씨만을 위해 기획한 ‘뇌물’이고 말과 차량을 빌려주는 것처럼 꾸몄지만 실제로는 사줬다고 봤다.

  하지만 특검의 주장은 증인들의 연이은 반대 증언에 힘을 잃고 있다. 특검은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리 알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최씨의 실체를 몰랐다고 주장하는건 삼성만이 아니다. 승마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팀 감독, 김종찬 전 승마협회 전무, 이재훈 승마협회 과장 등 대부분은 "정유라의 전 남편인 신주평,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설립에 관여했던 이규혁과 김동성, 문제부 노태강과 전재수 등도 한결같이 '최순실의 실체를 최근에서야 알았다"고 진술했다.

  특히 정유라의 승마훈련 뿐만 아니라 출산과정까지도 개인적으로 돌봐준 '후견인'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는 지난 5월 31일 법정에 출석해 "2015년 1월까지는 최순실은 정윤회의 전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현안 해결 위해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 했나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간 있었던 세 차례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과 이에 대한 대가로 뇌물을 수수하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36차례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현안 해결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직접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특검이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 합의에 대한 근거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은 기재 경위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과 독대 당시 '말씀자료' 정도다.

  특검이 '말씀자료'라 주장하는 것은 실제 말씀자료가 아닌 '참고용 자료'에 불과하며, 이를 독대 자리에서 실제로 언급했는지 여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안종범 전 수석은 특검 조사 당시 '대통령이 말씀자료대로 말씀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특검이 제시하는 '말씀자료'는 일반적인 형태의 말씀자료가 아니라, 참고자료 형태다. 말씀자료는 그냥 읽을 수 있도록 워딩 형태로 작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검이 제시한) 말씀자료는 편의상 '말씀자료'라 호칭했을 뿐 '참고자료'다. 면담 자리에 참고자료를 갖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며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삼성 측은 수첩과 말씀자료의 기재 경위와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수첩이 실제 독대 과정에서 나온 워딩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인지 확실치 않을뿐더러, 말씀자료는 사전에 대통령을 위해 참고자료로 만든 것일 뿐 실제 독대에서 그대로 얘기를 했을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 당시부터 "당시 청탁을 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박 전 대통령도 검찰 조사에서 청탁이나 대가합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삼성의 현안 해결 위해 영향력 행사했나

 또다른 쟁점 중 하나는 삼성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을 위해 ▲보건복지부(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메르스 관련 처벌 경감) ▲환경부·식약처(원료의약품 제조용 원료물질의 화평법 적용 제외) ▲공정거래위원회(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한 처분주식수 감면,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도입) ▲금융위원회(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승인) ▲한국거래소(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범정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여부다.

  특검은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한 근거로 관계부처가 삼성 관련 현안을 지속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반면 재판에 출석한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청와대 소속의 증인들은 모두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나, 삼성에게 유리하게 처리해주라는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압박은 전혀 없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공정위, 금융위,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대부분은 "삼성의 순환출자 해소,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삼성물산 합병과 메르스 사태 등에 대해 청와대에 수시로 보고한 것은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라며 "정책적·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현안에 대해 관계부처와 청와대가 협의하는 것은 일반적"이라고 증언했다.

  대부분은 '뇌물 수수자로 지목된 대통령으로부터 지시·외압도 없었고, 뇌물 공여자로 지목된 삼성과 접촉한 적도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특검이 이를 반박하기 위한 질문을 거듭하고, 삼성 측 변호인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삼성은 재단 출연 당시 재단에 최순실이 관여되어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고, 다른 기업들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 출연했음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유독 삼성에 대해서만 '뇌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처럼 특검의 공세에도 불구 구체적 증거나 증언이 미약한 상황에서 1심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1심 재판에서 구속 피고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기간은 최장 6개월로 이 부회장 구속기한은 오는 8월 27일까지다. 통상적으로 선고는 구속기한 만료 전에 이뤄지지만, 충분한 심리를 하려면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선고가 8월 말까지 나지 않으면 이 부회장은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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