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낙태하면 죄라면서…미혼모 양육비, 강제할 방법 없나

미성년 자녀 키우는 미혼 부모 중 미혼모가 72%
소송까지 가 승소해도 실제 양육비 받은 건 18%뿐
'안 줘도 그만' 인식 팽배…제도적 강제 조항 필요
선진국선 父가 양육비 안 내면 출국금지·재산압류
운전면허·의료보험·여권발급 정지…감옥에 수감도
"소득에서 양육비 원천징수해야" 靑청원 20만 돌파


[파이낸셜데일리=김정호 기자] "법이 양육자는 보호해주지 않으면서 비양육자만 감싸고 보호해줘요. (친부는) 양육비를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 받을 수가 없죠."


  홀로 26개월 딸을 키우고 있는 조가영(35·여)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구립어린이집의 보육교사로 일하던 조씨는 현재 무직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딸을 임신한 뒤 해고 통보를 받아서다.


  친부는 아이 사진을 보내도 아무 반응이 없을 정도로 딸에게 관심이 없다. 수차례 양육비를 요구해봤지만 "20만원밖에 못 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조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으며 딸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중순께부터 다시 일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경제적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씨는 "양육비를 어디에 썼는지 영수증을 달라는 사람도 있다더라. 양육비가 나가는 걸 그냥 생돈 나가듯 아까워하는 것"이라며 "양육비를 양육자가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양육비는 엄마에게 주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주는 돈"이라고 강조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 부와 모는 3만3108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미혼모의 비중이 72.3%(2만3936명), 미혼부는 27.7%(9172명)로 나타났다.


  양육 부담이 여성에게로 쏠린 현상은 특히 30대 이하에서 두드러진다. 20세 미만 미혼모는 435명, 미혼부는 28명이었다. 20대 미혼모는 4921명인 반면 미혼부는 789명에 그쳤다. 30대 미혼모는 8813명, 미혼부는 2516명으로 집계됐다.


  낙태죄 폐지 요구와 맞물려 '임신중절 수술을 하면 처벌받고 낳으면 돈 한 푼 못 받는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에게 미혼부가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양육비를 소득에서 원천징수하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20만명을 돌파해 정부·청와대 답변 대상이 됐다.


조씨와 같은 미혼모들이 아이 아버지로부터 양육비를 받기 위한 과정은 크게 '인지청구→이행청구소송→승소→이행명령청구→과태료 및 감치(수감)'로 요약된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이 2015년부터 소송, 추심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역할은 제한적이다.


  이행원이 문을 연 2015년 3월에서 지난해 12월 사이 미혼모가 접수한 건은 총 761건이다. 이중 확정(승소) 건수는 371건이고 실제로 양육비가 지급된 건수는 69건으로 집계됐다. 재판까지 가서 이겨 이행원이 추심에 나서도 친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아 이행 확률이 18.6%에 불과한 것이다.


  첫 단계인 인지청구는 친부가 자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경우 DNA 검사 등을 통해 친자임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행원은 수사 기관 같은 권한이 없기 때문에 미혼모가 미혼부의 주민등록번호를 모를 경우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데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심지어 아이 아버지의 이름조차 잘못 알고 있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후 소송 절차를 밟는 데 통상 1~2년이 걸린다. 결국 심신이 지쳐 소송까지 가지도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미혼모가 많다.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제도적으로 양육비를 안 주면 출국금지된다든가 의료보험을 쓸 수 없다든가 하는 강제 조항이 하나도 없다"며 "대개 안 주고 버틴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은 양육비 채무자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 주마다 세세한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캐나다의 경우 양육비를 체납하면 최장 180일까지 감옥에 수감된다. 또 운전면허와 여권 발급이 정지된다. 미국은 세금 환급 방해, 재산 압류, 운전면허 정지 등의 조치가 내려진다.


  매달 20만원을 지원하는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우선 조씨 같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지원을 받은 뒤에도 자녀의 수업료·급식비 등이 밀리는 등 어려운 상황이 증명돼야 한다. 이를 위해 수도, 전기 등 공과금을 밀린 내역이 담긴 증빙자료가 필요하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이 나와 지원 기간이 최장 9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될 가능성이 열렸지만 장기적인 양육 지원책이라고 하긴 어렵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소송이 끝난 뒤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을 때 취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이 없으니 이행원의 역할도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며 "미혼부도 자기의 행위에 대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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