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 서현정 기자] 오는 10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 발급일을 하루 앞둔 9일 법원이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출제오류와 관련해 성적 통지 등 대학입시 절차에 제동을 거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교육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는 이날 오후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생명과학Ⅱ 응시자들에게 성적표 발급을 미루는 등의 결정이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날 수험생 92명의 정답결정 관련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본안 소송의 판결을 선고할 때까지 효력을 정지했다.
이에 따라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생명과학Ⅱ 과목을 택한 응시자 6515명의 성적표 발급 등 대입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당장 오는 16일까지 각 대학의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가 예정돼 있고, 오는 30일부터는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되는 만큼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수시모집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제시한 대학들은 수능 성적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선발을 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현재 대책을 협의 중이며, 대입일정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속히 결정하고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번 사례와 유사한 수능 출제오류 논란은 있었다.
2008학년도 수능에서 과학탐구 물리Ⅱ 11번 문항이 그 예다. 당시 한국물리학회가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한다고 입장을 내놓자 평가원은 수능 성적 통지 이후 수시모집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복수정답을 인정한 바 있다. 이로 인해 1000여 명의 수험생들이 등급이 뒤바뀌는 사태가 있었고 정시모집도 일부 연기됐다.
2014학년도 수능의 경우 사회탐구 세계지리 8번 문항이 법정까지 갔다. 당시 일부 교사들까지 이의를 제기했지만 교육부와 평가원은 정답을 고수했고, 이후 집단소송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약 11개월 후 2심에서도 평가원이 패소했고 뒤늦게 피해를 본 수험생들을 지원 대학 등이 구제하도록 했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9일 오전 수능 채점 결과 브리핑을 통해 "기본적으로 이미 정해진 대입 일정을 진실하게 지켜나갈 것이고, 그것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다른 조건을 감안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손 놓지 않고 최선의 준비를 해서 기본 일정을 지키는데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정답 결정 효력이 유지될 경우 생명과학Ⅱ 과목의 등급이 결정된 성적표를 받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2022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및 정시전형에서의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며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신청인들의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으로는 보상할 수 없는 손해로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과목의 성적 통보가 지연될 수 있고, 2022 대입전형일정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본안사건을 신속하게 심리해 대입전형 일정에 대한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종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를 만족하는 멘델집단을 가려내 옳은 선지를 구하는 문제다.
해당 문항에는 156건의 이의가 제기됐으며, 이의를 제기한 이들은 계산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보기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가원은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 학업 성취 기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며 정답을 유지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출제오류에 대해 수험생 92명은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답 결정 처분 취소 본안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평가원이 즉시 재채점을 해 내일까지 성적을 재처리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일 수 있으며, 지금이라도 전원 정답 등으로 종결 처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며 "수시·정시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수시·정시가 모두 종료된 후 재판이 진행돼 또 다시 번복 결과가 나올 경우에는 또 다른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