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FD진단] '파월 쇼크'에 산업계 초긴장…원자잿값 상승-고환율 '이중고'

직격탄 맞은 항공사, 외화환산손익 악화…달러화 차입금 축소 추진
반도체, 업황 악화 가속화 우려…중소기업계, 업종별 호재·악재

 

[파이낸셜데일리 박목식 기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매파'(통화긴축 선호) 발언이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산업계도 초긴장 상태에 놓였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파월 의장은 물가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고금리 유지 방침을 강력히 시사했고, 이 발언 이후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29일 원/달러 환율은 13년 4개월 만에 장중 1,350원을 넘어섰다.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로 환율이 치솟음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급등한 원자잿값에 더해 환율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을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이미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환율 10원 변동 시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1천200원이었던 환율이 1천300원으로 오르면 장부상 3천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아시아나항공은 환율이 10% 오르면 세전순이익이 3천585억원 감소한다. 과거에는 환율 상승 시 해외 영업으로 얻는 외화 수익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현재는 국제선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아 외화 수익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고환율 여파로 올해 2분기 항공사의 외화환산손익은 손실로 전환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외화환산손익은 각각 작년 2분기 111억원, 53억원에서 올해 -2천51억원, -2천747억원으로 악화됐다. 대한항공 순외화부채는 약 35억달러(4조6천813억원)에 달한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2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냈음에도 외화환산손실이 커지면서 당기순손실이 915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됐다.

 

항공기 리스 비중이 높고 신규 항공기를 도입할 예정인 LCC(저비용항공사)들의 부담도 커졌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운항 규모를 회복 중인 항공사들은 고환율이 해외여행에 대한 부담감을 늘려 여행 심리를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환율변동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원화 고정금리 차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원화와 엔화 등 차입 통화를 다변화해 달러화 차입금 비중을 축소하고 회사 내부의 정책에 따라 통화 파생상품을 계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주력 산업인 메모리반도체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업황은 올해 들어 다운사이클에 진입했는데 세계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메모리 산업 특성상 미국이 추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하반기 업황 악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서버 투자에 보수적으로 돌아서면서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시설 투자를 추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자금 조달 부담도 더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고, 이달 19일에는 기흥 반도체 연구개발 단지 조성에 약 2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대규모 투자발표를 했다.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선 차입금이 불가피한 만큼 금리 인상 시 삼성전자가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차입금보다 예금이 더 많아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라면서도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로 고심하고 있다"고 회사 분위기를 전했다.

 

원유 도입 과정에서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는 정유업계 역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특히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환율이 더 오를 경우 정유사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유 도입 자금 부담이 대폭 늘어나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최근 경기침체 우려 속에 석유제품 수요가 둔화되면서 정유사들의 수익을 좌우하는 정제마진이 지난달 연중 최저 수준까지 급락했고, 이에 현대오일뱅크는 대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하반기 기업공개(IPO) 계획을 지난달 철회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는 환율 상승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출 중심의 자동차 업계는 환율이 상승하면 매출 증가 효과가 있지만, 원자잿값이 덩달아 오른다는 부담도 있다.

 

영세한 부품업체들이 경영난으로 부품 생태계가 타격을 입을 경우 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급격한 환율 변동이 신흥국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고환율이 긍정적인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수입 비중이 큰 업체의 경우 원/달러 환율 변동이 원자재 가격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철강회사는 제품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 헤지(위험 회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제품 수출 비중이 40~50% 수준이다. 환율 변동에 따른 수입 비용 증가분과 수출에 따른 수익 증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현대제철도 수출 비중이 예전과 비교해 커져 환율 헤지가 개선됐다고 설명했고, 동국제강은 수입이 30% 미만이지만 수출 비중이 30% 이상이어서 역시 영향은 중립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중소기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통화 긴축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 오름세가 이어질 경우 화장품, 식품 등을 외국에 직접 수출하는 중소기업에는 호재가 된다. 원화 가치가 하락해 외국에서 자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원자재를 해외에서 사들여 와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간접 수출' 업체의 경우 고환율은 악재다. 수입 단가는 오르지만,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즉각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고환율에 따른 비용 증가를 중소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며 "납품단가 연동제가 최대한 빨리 시행돼야 하는 이유"라고 당국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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