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 서현정 기자]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의 자녀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 법원이 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났다고 판단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자녀 측은 판결문을 검토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강제징용 피해자 자녀 A씨 등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 부친은 1940년 12월30일부터 1942년 4월16일까지 일본 이와테현 한 제철소에서 강제징용 피해를 겪었고, 대일 항쟁기간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도 피해자로 인정했다.
변론 과정에서 일본제철 측은 대한민국 법원에 관할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A씨 등이 소멸시효가 지난 뒤인 2019년 4월에 이번 소송을 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관할은 대한민국 법원에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일본 기업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였다.
박 부장판사는 "원고들의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아닌 2012년 대법원 판결로써 해소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소멸시효가 도과했다고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이 상고심의 파기환송 취지를 따라야 해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은 2012년 대법원 판단이 나온 때에 확정됐다고 봤고, 이에 따라 소멸시효도 2012년 5월24일부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 국가 권력이 관여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적용대상에 포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 판결은 2018년 재상고심에서 확정됐다.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혹은 불법행위가 있었던 때로부터 10년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청구권은 소멸한다. 다만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시효가 정지된다.
선고가 끝난 뒤 A씨 등의 대리인은 "같은 판사가 지난달 11일에 소멸시효 경과로 (강제징용 피해자 자녀들의) 청구를 기각한 것과 같은 취지라고 생각한다"며 "광주고법 판례는 2018년을 기산점으로 삼아서 다퉈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파기환송심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산정해야하고, (2012년이 기준이라는) 논리를 반박할만하다고 생각한다"며 "원고와 상의해보니 항소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향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자식들이 70년전 끌려간 아버지의 기록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2018년 판결도 일본제철이었다. 일본 정부 뒤에 숨어 피해회복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중에 강제징용 재판 지연이 포함된 것을 언급하며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도 있었으니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법농단을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달 11일 강제징용 피해자 자녀 B씨 등 5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전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소멸시효 도과를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다만 강제징용 관련 사건 하급심에서 소멸시효 산정 기준을 대법원 재상고심으로 판결이 확정된 2018년 10월로 봐야한다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대법원은 아직까지 강제징용 피해의 소멸시효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