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 서현정 기자]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가 일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며 '전(錢)의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최근 컴퓨터, 자동차, 가전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품귀 현상이 나타나자 파운드리 업체들이 연달아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 2007년과 2010년의 D램 양산 경쟁에서 비롯된 '치킨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과도한 해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독일 뮌헨오토쇼에서 950억 달러(약 110조원)를 투자해 유럽에 2곳의 반도체 제조시설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했다.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이래 '물량 공세'를 예고한 상태다.
인텔은 당시 235억 달러(약 27조3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공장 2곳을 짓고, 뉴멕시코주 공장을 증설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300억 달러(약 34조원)를 투자해 세계 4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협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투자 계획까지 합치면 인텔은 올해만 파운드리 시장 패권 도전에 약 1485억 달러을 베팅한 상태다.
선두 업체들도 가만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TSMC도 대만 가오슝에 7나노 공장 6곳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미국에 120억 달러(약 14조원)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대규모 설비 투자를 검토 중이다.
세계 2위 삼성전자도 파운드리와 시스템 LSI 분야에 171조원을 투자한다고 최근 발표했으며, 미국 현지에 최소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들여 제2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3위 대만 UMC도 36억 달러(약 4조2000억원)를 투입해 대만 남부 파운드리 공장 증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5위인 중국의 SMIC도 중국 상하이 자유무역 시험구에 8억7000만 달러(약 10조2700억원)를 투자해 신규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과감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반도체 업체들의 양산 경쟁이 자칫 '치킨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치킨게임은 차량 2대가 마주 보고 달리며 누가 먼저 피하는지, 즉 누가 겁쟁이(치킨)인지 가려내는 게임에서 온 말인데 사실상 양쪽 모두 자멸할 수도 있는 과도한 경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반도체 업계는 지난 2007년 대만 D램 기업들이 주도한 1차 치킨게임으로 당시 세계 2위였던 독일 키몬다가 파산했고, 이어 2010년 2차 치킨게임으로 세계 3위 일본 엘피다가 무너졌다.
D램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도 생존을 위해 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며 출혈 경쟁을 벌이다 결국 일부 업체가 주저앉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다만 D램과 달리 파운드리는 수주 산업이라는 특성상 동일 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파운드리 시장 매출은 8분기 연속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상위 10곳을 기준으로 한 세계 파운드리 시장 매출은 전 분기 대비 6.2% 증가한 244억 달러(약 28조4200억원)를 기록했다.
업체별 점유율은 TSMC가 52.9%로 가장 높고 ▲삼성전자(17.3%) ▲UMC(7.1%) ▲글로벌파운드리(5.5%) ▲SMIC(4.7%)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