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데일리 강철규] 정부가 당초 계획보다 2조원가량 늘어난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하고 다음 주 국회에 제출한다. 경제·민생의 어려움과 영남권 산불 복구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증액했다.
하지만 35조원 규모의 대규모 추경 편성을 요구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에서도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12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은 다소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신속하게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필수 추경'은 ▲재해·재난 대응(3조원+α)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4조원+α) ▲민생 지원(3조원+α)에 초점을 맞춰 편성됐다.
재해·재난 대응과 관련해서는 영남권 산불의 신속한 피해복구를 위해 재해대책비를 기존 약 5000억원에서 2배 이상 보강했다. 임대주택(1000호) 주택 복구 저리 자금과 산림헬기(6대)·AI감시카메라(30대)·드론(45대)·산불진화차(48대) 등 재해·재난 대응을 위한 첨단장비 도입 예산도 반영됐다.
미국 관세 피해 대응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도 마련했다. 수출기업 등에 정책자금 25조원을 공급하고 수출 바우처는 2배 이상 확대한다. AI 분야에는 1조8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고 반도체 산업 인프라 지원도 확대한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도 내놨다. 소상공인이 공공요금과 보험료 납부에 사용할 수 있는 연간 50만원의 '부담경감 크레딧'과 연매출 30억원 이하 사업자에 대해 카드 소비 증가분의 일부를 온누리 상품권으로 환급하는 '상생페이백' 사업을 신설했다. 저소득 청년·대학생과 최저신용자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도 2000억원 확대한다.
정부는 경제 상황상 재정 투입이 시급하고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는 내용들로 이번 추경안을 편성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필수 추경'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정부는 추경안이 4월 말~5월 초까지 통과되길 기대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국회, 언론 등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당초 말씀드렸던 10조원 규모보다 약 2조원 수준 증액한 12조원대로 편성하겠다"며 "추경안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 초당적 협조와 처리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국민 25만원 지역화폐 지급' 등 35조원 규모의 대규모 추경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던 민주당에서는 12조원 규모의 정부안이 경제·민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최소한 15조원까지 증액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10조원에서 2조원 늘리기는 했지만 한국은행 총재도 15조~20조원이 필요하다고 했다"며 증액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직은 국회에서 심의하고 의결할 때까지는 시간이 더 있다"며 "좀 더 전향적으로 판단해서 필요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로는 "추경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정부안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당 내부에서도 정부 추경안이 다소 미흡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12조원 규모의 추경이)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규모인데, 새 정부 출범 후 2차 추경까지 염두에 둔 편성인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역시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협의를 통해 민생 관련 분야 예산을 일부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소상공인과 경기 진작 분야 증액을 야당과 협의 중"이라며 "정부가 최종안을 제출하면 논의하겠지만 아직 변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여야 모두 산불 피해 복구의 시급성과 경기 진작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추경안 처리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가 재정 여건 등을 이유로 증액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어 국회 처리 과정에서 논의가 다소 지연될 여지는 남아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부진으로 추경 재원의 대부분을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전날 대정부질문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국채 시장 상황을 봤을 때 큰 규모의 추경은 지금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규모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하다"며 "가능하면 빨리 추경이 통과돼 집행할 수 있는 여러가지를 고려해 12조원으로 잡고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