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계절 여름이 왔다. 무언가를 태울 듯 내리쬐는 햇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드럼, 날카롭게 찢어지는 기타, 파도처럼 요동치는 관객들, 열창, 환호.
록 페스티벌의 시즌 여름이 왔다. 무언가를 태울 듯 내리쬐는 햇살, 심박수에 맞춘 드럼, 감미로운 기타, 호수처럼 잔잔한 관객들, 가창, 박수.
그 많던 헤드뱅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록의 계절 여름, 록이 흉년이다.
'몇 번의 시도 따위가 무슨 노력이야. 우연 속에 얻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몇 번의 성과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그럴 수는 없어. 이룰 수도 없어."(맥시멈 스피드)
'원(WON)'은 황무지 같은 한국 록 신을 일구고 있는 밴드다. 1998년 결성, 16년째 정통 헤비메탈이라는 틀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헤비메탈 밴드를 믿지 못해서 섭외가 잘 안 들어오는 거 같아요. 지난해 한 록페스티벌에서는 남진 선생님에 앞서서 공연하기도 했어요.(웃음)"(손창현·보컬)
1999년 데뷔 앨범 '록 콤플렉스'를 공연과 입소문만으로 2만5000장이나 팔아치운, 풍년이었던 해도 있다. "그때는 경험이 너무 없어서 보따리를 매고 다니면서 CD를 팔았죠."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1200여회 공연을 이어오며 숱한 동료들이 떠나갔다. 2008년 2집 앨범에 실린 '모든 철새는 죽어서 페루로'는 떠나는 동료를 바라보며 쓴 곡이다. 위기를 견디며 밴드 생활을 이어온 손창현은 절규하듯 고음을 뻗는다.
'돌아오라 붉게 물들여진 높은 이곳으로 돌아오라. 다시 한 번 더 이곳에서 작은 내 입술이 외칠 수 있도록, 눈물까지도 마르고 없도록 텅 빈 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움츠린 사람들 사라질 때까지.'(모든 철새는 죽어서 페루로)
"그때는 정말 외로웠어요. 함께하던 밴드들도 장르를 바꾸고 정통메탈을 하는 팀이 없었죠. 그래도 관둔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몇 번의 곡절을 거쳐 손창현(보컬) 지광현(기타) 편장현(드럼) 김선주(베이스) 신능섭(기타)으로 완성된 '원'이 4년 만에 정규 4집을 발매했다. '로커스 메뉴얼(Rocker's Manual)'이라는 도발적인 앨범 제목을 붙였다. 한우물만 팠던 밴드로 누리는, 납득할 수 있는 자신감이다.
"로커는 미련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명예욕도 버리고 직진해야 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확장해서 이야기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처럼 살지 말자는, 어쩌면 추구하는 음악과도 맞아떨어지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합리화시켜가며 행해지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드럼, 날카롭게 찢어지는 기타, 끝 간 데 모르는 고음이다. 헤드뱅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곡들로 채웠다.
"이번에 앨범을 보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봤는데 아득하더라고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싶기도 하고, 16년을 한 직장에서 근속한 거잖아요. 나름 중간중간 갈등도 있었죠. 버티고 헤쳐나갔던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성과는 빛을 보고 있다. 일본 헤비메탈 전문 레이블인 하울링 불(Howling Bull)과 세계적인 밴드 '헬로윈(Helloween)' '테스타멘트(Testament)' 등의 앨범을 발매한 독일의 누클리어 블래스트(Nuclear Blast) 등이 '로커스 메뉴얼'이라는 도발적인 앨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 라이브 요청이 왔어요. '앨범 퀄리티만큼 라이브가 되느냐'고 묻더라고요. '우리는 앨범보다 라이브가 더 유명한 팀'이라고 말해줬죠."
'한국의 아이언메이든' '한국 록의 수문장'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성과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원'은 6월14일 광주 메탈 페스트를 시작으로 7월 전국 투어에 돌입한다. 이제 그 많던 헤드뱅어들이 다시 열광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