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공백기를 보냈어요. 그 시기가 아니었다면, 음악적으로 제가 기대한 것보다 하찮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겠죠."
실험적인 음악과 단호한 어법으로 단단했던 록그룹 '넥스트'의 리더 겸 솔로가수 신해철(46)이 둥글어졌다. 2007년 1월 재즈풍의 노래를 담은 정규 5집 '더 송스 포 더 원(The Songs for the One)' 이후 7년5개월 동안 조금씩 불어난 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음악과 사랑,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 수록곡 '아따(A.D.D.a)'를 선공개하며 '진짜가 돌아왔다'는 평을 받은 신해철이 음악감상회를 열고 신보를 소개했다. "예전에는 8곡이 담기는 앨범을 만들 때 7곡을 만들어두고 마지막 날 한 곡을 더했다면 지금은 다릅니다. 쟁여둔 곡이 140곡 정도 되거든요."
140여곡 중 장르가 유사한 4곡이 담긴 파트1이 먼저 공개된다. "가족들과 살면서 삶에 필요한 안정, 위협, 아이들이 자라면서 느끼는 두려움, 공포 등을 체감했습니다. 다른 쪽으로는 음악적으로 처해있는 정체상태에 대해 질문해야 했죠."
미리 선보인 '아따'가 앨범을 설명한다. 네오솔, 펑크, 포스트 디스코, 라틴, 재즈 등 5가지 장르를 혼합한 '원맨 아카펠라' 곡으로 1000개 녹음 트랙에 자신의 목소리를 중복 녹음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곡의 구상부터 완성까지 1년6개월여가 걸렸다. 녹음 기간만 2주다.
"저는 작업할 때 안 자고 버티는 게 특기에요. 최장 90시간까지 안 잔 적이 있죠. '아따' 작업은 목소리로 녹음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곤하면 몸이 안 따라줬어요. 목소리가 갈라지고 저음, 고음이 안 되지요. 체중도 베이스를 내기 위해서는 불려야 하고 청아한 소리를 낼 때는 빼야 했어요. 품을 많이 팔았는데 재밌어 해주셔서 고맙죠."
"하루 17시간씩 작업"하는 등 품을 팔고 공을 들인 앨범이다. 특히 팬미팅에서 앨범 수록곡 모두를 들려주고 벌인 투표로 타이틀곡이 된 '단 한 번의 약속'은 신해철이 15년의 세월 동안 다듬은 노래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든 러브송이다. 지금은 그 대상이 가족 전체로 확장됐다"는 설명이다. 기존의 히트곡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의 내레이션이 곡 후반부에 배치돼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사랑하는 이들을 향해 '네가 어떤 모습이든 좋다. 아프지만 않으면 무엇을 해도 좋다'는 위로다. "집에서 똥 기저귀를 갈면서 살고 있으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 사실 우리는 칼 같은 각오로 사랑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연애 때의 감정이 '점멸'이라면, 지금 우리의 사랑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꺼지면 안 되는 '영원의 불꽃'이죠."
'프린세스 메이커'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을 위해서도 오랜 시간을 썼다. "90년대 뮤지션 상당수가 상업적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킬 노래를 만들고 자리가 굳어지면 독한 노래를 만들어요. 이번 앨범은 그 절차를 마치기 전 마지막 앨범이죠. 대중음악 하는 사람은 대중에게 봉사한다는 입장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수 서태지(42)의 "형은 편안한 음악이라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음악"이라는 지적처럼 앨범 수록곡들은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를 위태롭게 걷는다.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부담되지 않는 곡들이었으면 한다"는 신해철 바람의 성사 여부는 대중에게 달렸다.
다만, 음악감상회에서 예정에 없이 공개된 '넥스트' 앨범 수록곡은 익히 알고 있는 '넥스트'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이질감이 없다. 밴드 '노바소닉'의 보컬 이현섭(36)과 신해철의 트윈 보컬로 만들어진 곡 '아이 원트 잇 올(I WANT IT ALL)'로 색이 다른 보컬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가 신선하다.
"가칭이지만, 이름은 '넥스트 유나이티드'를 생각하고 있어요. 오케스트라처럼 수석을 두고 베이스 3명, 기타 4명 등으로 구성하는 식이죠. '청소년 넥스트'도 만들어집니다. 라인업을 공연에 따라 달리하는 거죠. 굳이 4명의 멤버가 영원한 피의 맹세를 한 것처럼 활동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신해철의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1은 26일 발매된다. 가을 '넥스트'의 새 앨범, 올해 안에 '리부트 마이셀프'의 나머지 부분을 공개한다는 분주한 계획이다. "나이가 마흔여섯인데 아직도 살을 빼라는 요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거나 참신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비치는 것보다는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기왕이면 제가 차린 식탁에 와 앉는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