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프로그램은 10여년째 KBS ‘개그콘서트’ 독주체제다. 한때 SBS가 컬투(정찬우·김태균)를 내세운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를 통해 ‘개그콘서트’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사이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1990년대 초만 해도 MBC는 ‘코미디 왕국’으로 불렸다. 그 영광의 한 가운데 개그맨 이홍렬(60)이 있었다.
‘귀곡산장’ ‘도루묵여사’ ‘큰집 사람들’ 등 시청자가 지금도 기억하는 이 프로그램의 중심은 분명 이홍렬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성공한 코미디언이 그러하듯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전환했다. ‘이홍렬쇼’는 90년대 중반 시작해 약 5년 간 최고의 토크쇼로 자리매김 했다. 그리고 이홍렬을 더 이상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랬던 이홍렬이 돌아왔다. 방송 인생 36년, 그의 말처럼 “이룰 것을 모두 이룬” 그가 MBC의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의 길'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코미디의 길’ 주인공을 맡은 것이다. 환갑의 나이, 이제는 쉬엄쉬엄 방송을 해도 될 시기에 그는 자신과 서른살은 족히 차이가 나는 까마득한 후배 코미디언들과 MBC 코미디 프로그램 부흥을 위해 나섰다. 왜 돌아온 것일까.
“코미디 정신을 잊어본 적은 없어요. 코미디를 하든, MC를 하든 결국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야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서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정통 코미디를 하기 힘들어졌을 뿐이죠. 그런데 기회가 왔어요. 그게 바로 ‘코미디의 길’이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접하게 되면 환장한다”고 고백했다. 바로 페이크 다큐다. ‘아직도 못해본 것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몸이 움직였다. 그가 출연하는 ‘코미디의 길’은 말 그대로 이홍렬 자신이 주인공이다. 환갑의 나이에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이홍렬이 겪는 애환을 그린다. MBC 신인 개그맨 김용재가 이홍렬과 호흡을 맞춘다. 그는 “‘코미디의 길’이 ‘개그콘서트’와 유사한 형태의 프로그램이었다면 출연을 고사했을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후배들과 호흡을 맞출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단순히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코미디 스튜디오로 복귀한 것은 아니다. 후배 코미디언들에게 일종의 ‘부채 의식’이 있다. 그동안 “후배들을 잘 챙겨주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제가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욕심 다 버리고 후배들에게 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어요. MBC 코미디의 부활,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아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그들이 스타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또 MBC 코미디가 부활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시청자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많이 침체돼 있다”고 짚었다. 이때 코미디언이 할 일은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제 선배들도 그랬습니다. 저도 그 길을 가야죠.”
MBC 코미디언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대중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인급이나 마찬가지다. 이홍렬과 호흡을 맞추는 김용재만 해도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결국 이홍렬이 적지 않은 나이에 ‘코미디의 길’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셈이다. 모르긴 몰라도 MBC는 이홍렬이 MBC 코미디를 다시 살려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누가 들어도 부담스럽다.
이홍렬은 “부담된다”면서도 “부담스러워 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래야 나태해지지 않는다”는 다짐이다. “긴장을 해야 자기 역량을 100% 발휘한다고 본다”며 “열심히 하면 결국 누군가는 알아봐준다”고 말했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누군가 옆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면 자극을 받아요. 나도 더 잘하고 싶죠. 그러다 보면 모두가 다 열심히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또 좋은 이야기가 방송사 안팎으로 돌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는 겁니다.”
문제는 젊은 감각이다. 젊은층의 입소문을 타야 프로그램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시청률이 올라간다. 이홍렬이 2014년에 90년대식 개그를 한다면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홍렬만의 복안은 있을까.
“개그는 변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웃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어요. 다만 누가 그 개그를 하느냐가 중요하죠. ‘코미디의 길’의 코미디를 ‘개그콘서트’의 코미디언들이 하면 웃어요. 마음을 열고 봐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MBC는 스타를 발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홍렬은 “나와 함께 하는 후배들은 모두 젊은 사람이다.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웃음을 줄 것”이라며 “나는 조금 나이가 있는 층을 공략하겠다”고 귀띔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이홍렬이다. 최원석 PD는 “대본의 토씨 하나까지 체크하는, 누구보다 까칠하지만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이홍렬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성격으로 태어났는데 어쩌겠어요. 저도 한때는 이런 제가 싫더라고요. 그런데 또 저는 이런 제 성격을 사랑해요. 우리는 지금보다 더 완벽해질 필요가 있어요. 깐깐하고 까칠해야죠. 그러지 못하니까 배가 가라앉고, 다리가 무너지잖아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