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박정민(27)의 첫 등장은 충격적이다. 2011년 영화 '파수꾼'에서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지만, '연기파 배우'로 불리며 충무로의 샛별로 떠올랐던 박정민은 영화 '전설의 주먹' '감기' '신촌좀비만화' 등에서 상반된 캐릭터를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SBS TV '너희들은 포위됐다' 출연은 의외의 선택이다. 실시간 촬영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시스템은 영화배우로 쌓아온 박정민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껏 연기하지 않은 능청스럽고 온순하고 긍정적인 신입 경찰 '지국'이다. 드라마를 마친 후에야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와 전혀 달랐다. 심지어 나와도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두려운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다. 도전정신이 느껴졌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데, 이 드라마도 처음부터 눈치를 보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새 인물을 창조하는 매력도 컸다. 목소리부터 외모까지 박정민과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진심으로 연기해야 하는 부분에서 초반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신입 경찰 P4 멤버 중 지국의 성장기이자 배우 박정민의 성장"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어딜 가서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었다. 그 중 잘한다고 칭찬하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내가 (연기를)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숨기고 있던 내 연기력이 들통 났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껏 감추고 있었지만, 인정하게 됐다."
그는 "연기 못한 부분이 보였다. 경험하거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표현하느라 애썼다. 내 손으로 범인에게 수갑을 채울 때 느끼는 감정도 그랬다. 또 대본에는 눈물을 흘린다고 나와 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짜로 흘릴 수도 없었다. 스태프들이 3~4시간 정도 기다려준 적도 있다. 내가 모르는 감정들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장면들은 지금 보기 부끄럽다"고 아쉬워했다.
박정민은 "이 드라마는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온 도움 됐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인 방황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걱정도 됐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래서 연극을 하나 만들어서 공연도 했다. 앞으로 방향을 찾는 도중에 드라마가 찾아왔다"며 고마워했다.
이어 "연기할까 말까 고민할 때였다. 오기 부리며 했다. 한때는 연기를 너무 못해서 돌아가지 할아버지 무덤 안고 도와달라고 한 적도 있다. 주위에서 영화 하던 놈이 연기한다고 비웃기도 했다"며 '좋은 감독님을 만났고 좋은 기회로 데뷔했다"고 좋아했다.
"영화공부를 할 때 토요일 날마다 실리는 영화 챕터를 다 스크랩해 놨다. 최근 집 정리 하나다 발견한 파일 중 당시 가장 잘 나갔던 감독님 7명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내가 네 분과 작업했다. 이제까지 얼떨결에 좋은 감독님을 만났다."
박정민은 "나는 노력형이다. 천부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많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맡은 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박정민은 차기작을 검토하며 단편영화 제작에 들어간다. "이달쯤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극본도 직접 썼다. 영화 공부를 7~8년 하다 보니깐 한번 찍어보고 싶다.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하다. 영화 연출을 통해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