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데일리=강철규 기자] 항공업계의 해묵은 난제인 '조종사 구급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종사 수급 문제 못지 않게 향후 정비사 수급난 또한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성장과 함께 항공 수요가 폭증하며 각사의 기단 확대가 이어졌고, 조종 인력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항공산업이 급성장하며 중국 항공사로 이직하는 조종사가 늘며 '조종사 엑소더스' 현상이 가속했다.
자유한국당 국토교통위원회 송석준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18년 외항사로 이직한 조종사는 39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 항공사를 떠난 조종사들은 2014년 24명에서 2015년 92명, 2016년 100명, 지난해 145명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중국 민항총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중국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조종사 1500여명 중 한국인 조종사는 20.3%(203명)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규모로 밀어붙이는 중국 항공사들은 국내 조종사들에게 2배 이상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을 빼갔다"며 "국내 항공사 간 조종사 빼가기 경쟁도 예민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조종사 수급문제 계속 되는데…현황 파악도 부실?
중국 항공시장의 성장에 따라 인력 유출 문제는 지속될 전망이다. 보잉사가 발표한 '2018~2037 중국민간항공시장 전망'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0년간 총 1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7690대의 신규 항공기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업계의 성장에 비례해 조종사 수요가 급증하며 국토부는 지난 2010년 조종사 교육 기관인 울진비행교육훈련원을 설립했다. 현재 국내 조종사 양성 교육기관은 총 8개 기관 9개소다. 국토부는 또한 지난해 6월부터 연간 약 600명의 조종사 인력 공급을 위한 정부·훈련기관·항공사 협의체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당장 항공사들이 원하는 숙련된 조종사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사업용 조종사 비행 경력은 200시간이지만, 항공사들은 250~1000시간 및 제트 비행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수급문제가 지속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항공종사자 통계자료 구축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지난 9월 발간한 '항공종사자 인력수급 전망 기초조사' 보고서를 통해 "현재 항공종사자 자격관리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으나, 자격 발급 관련 외의 사항인 개개인의 이력사항(이직, 퇴직, 훈련교육 이수 등) 관리는 수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국내 항공종사자들의 현황 파악조차 어렵다는 얘기다.
◇'단기 수급'이 난제…외국인 조종사 확대·정년 연장 논의돼
조종사 수급난 문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당장 앞으로 5~10년 간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외국인 조종사 도입에 대한 자율성을 강화하거나, 외국처럼 조종사 정년을 한시적으로 연장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통상 국내 항공사 조종사의 정년은 만 60세로, 일부 항공사는 만 65세까지 촉탁직 채용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보다 먼저 조종사 부족 현상을 맞닥뜨린 일본은 2015년 조종사 정년을 만 67세로 늘리고 항공안전에 지장이 없도록 관리 수준을 강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나라에서는 이미 연령제한으로 인한 업무 권한 축소를 강제하지 않는다"며 "조종사 부족 사태를 겪는 국내 업계도 한시적인 정년 연장을 도입하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경력 조종사 채용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시적인 자율화를 통해서라도 공급과 수요의 균형점을 맞춰 단기 수급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외국인 파견 조종사 확대로 인한 내국인 조종사와의 형평성 문제, 비행 안전에 대한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종사 이어 정비사 수급 부족 쓰나미 온다"
한편, 조종사 문제 못지않게 정비사 공급 또한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종사 구인난과 정비사 수급난은 결이 다르다. 조종사는 숙련된 조종사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공급 불균형이 완화될 여지가 있다. 당장 기장급은 부족하지만 부기장급의 양성은 순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비사 수급 부족은 현재보다도 향후 미래에 더 심화할 수 있는 사안이다.
LCC들은 대형항공사(FSC)처럼 자체적으로 정비사 인력를 양성할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FSC 출신 정비사 중 은퇴 시기와 맞물려 LCC로 가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고령화'로 인해 심각한 정비사 부족 사태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감에 단골로 등장한 조종사 부족 문제만큼 정비사 수급난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정비사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외국인 조종사가 국내 항공사에서 일하는 경우보다도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국제적으로 인증 받은 숙련된 정비사가 국내 항공사에 일하려면 국내 면장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때 한국어로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벽에 부딪히게 된다"라고 지적했다.